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따를 수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 다짐하는 일들.
약속하는 일들.
대부분은 지켜지지 못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해보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어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나 봐'
라는 생각이 들어버릴 때도 있다.
사탄이 심어주는 생각이 아닐까.
오늘 읽은 구절에 두 번의 예가 잘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마가복음 14장 29~31절 -
하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그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은 전부
예수님을 두고 도망간다.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 마가복음 14장 71~73절 -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실, 분명 그것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삶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 중 어느 누구도 편하게 죽음을 맞지 못했다.
또 비슷한 말씀이 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마가복음 14장 37~38절 -
우리의 마음은, 영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또한 동일해지기를 원한다.
기도할 때마다 그것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과 기도하러 가서 잠을 자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모른다고 부인하지만,
하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기셨으며,
천주교에서는 초대 교황으로 베드로는 추대하고 있다.
우리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대단한 믿음의 선배들로 생각한다.
그들의 이후 행적 때문이다.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분명 살면서 늘 죄를 짓는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태어남 그 자체가 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하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어서서 나아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점점 나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죄책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면 분명 죄인임을 알게 되고,
그것 때문에 계속해서 가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마주하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 종교를 떠나 한 명의 인간이
성숙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들을 볼 때마다
나는 유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충격적인 부분이다.
그는 정말 비참한 결말을 맺는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제사장들에게 받은 대가를 돌려주고서는
성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만약에, (if only)
...
유다가 회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삶을 마치지 않고서
남은 삶에서 행동으로 속죄하며
갚으려고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우리는 그를 어떻게 기억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용서받지 못하고, 태어나지 않는 것만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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