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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국내도서
저자 :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 방곤역
출판 : 문예출판사 199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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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사실 조금 걱정했었다.

철학을 좋아하고, 철학 책을 하나씩 읽고 있는 요즘이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생각났다.


너무 어려웠던 책. 그래서 혹시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 걱정 반,

또 이번 책은 또 무슨 생각을 줄까 하는

기대 반으로 책을 펼쳤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전혀 어렵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거절했지만) 사람답게?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주인공인 로캉탱의 일기를 통해서 전하는 형식의 글이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로캉탱은

어느 순간부터 삶에서 '구토'를 느낀다.


"최선의 방법은 그날그날 일어난 일을 적어두는 것이다.

뚜렷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일기를 적을 것."


책의 첫 글이다. 정확히는,

사물에 대한 사실 묘사가 아닌,

자신의 시선의 변화를 기록한다고 한다.

시선의 변화.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일까 싶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던 중, 정말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고,


그 구절을 통해서

사르트르가 말하는 시선의 변화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캉탱은 어느 순간, 자신이 물건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들이 자신을 만진다고 느낀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차가운 감각이 느껴졌고,

철로 된 문 손잡이가 자신의 손을 만지고 있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책의 이 부분이 난 가장 인상 깊었다.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법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익숙하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나를 3인칭의 시점으로 보게 될 때가 있다.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것은

어릴 적 갔던 야구장이었다.

잠실 구장에서 했던 삼섬의 경기였고,

이승엽 선수가 만루 홈런을 쳐서 삼성이 11:2였나... 승리했던 경기였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갔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가 작아 보이는 곳이 처음이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의 생각이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난 아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그 정도인데, 이 세상 속에서는 어떨까.

그때부터 가끔, 이 책의 주인공인 로캉탱이 느꼈던 것처럼

세상이,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낯설어 질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사르트르도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OWER 주관적인 생각ㅋㅋㅋㅋ


그렇다고 내가 존재의 허무함을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이런 사람들과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로캉탱도 그렇다.

음악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며,

존재의 허무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진다.


희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단어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더 명확히 그것을 설명한 단어를 찾지 못한 관계로 사용한다.


사실, 로캉탱의 행위에 대한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글을 쓰는 일로 삶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이 희망일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사르트르는 말하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는 이것을 '저주받은 자유'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가 말한 '존재가 본질에 우선한다'라는 말은

존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어떤 본질도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책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니 베르베르의 '신'이 생각난다.)

우리의 삶은 하나로 고정된 형태가 아니다.


존재가 있고, 본질이 있다는 말은

우리는 각자의 삶을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재미있게도

니체와 차라투스트라였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과 꽤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느꼈다.


삶은 허무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허무주의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허무함을 딛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사르트르는 로캉탱의 글을 통해서

본질에 대한 자유를

마치 '죽음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시작과 끝이 명확한 선택의 죽음보다는

시작을 알 수 없어 본질이 죽은 자유를 선택하겠다.



사르트르의 구토.


지금까지의 다른 모든 책들과 같이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내 삶에 당장

큰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객관화.


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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