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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단편 중 하나인

<상서-죽음을 슬퍼하며>를 꼭 언급해야겠다.


이 외에도 <흰 빛>이나 <약>, <고향>등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상서는 주제의 표현 방법이 다른 것과 달라서일까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루쉰의 소설 속에는 '죽음'이 많다.

루쉰은 그것을 통해서

한 시대의 죽음 혹은

문명(아니면 문맹)의 죽음을 말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루쉰의 소설 속에서는 한 인물의 죽음은

변화하지 않은 개인의 죽음이다.

흰 빛에서도 그러했고,

쿵이지에서도 그랬다.


늘 그 자리에 있던 한 개인이.

늘 그래왔던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는다.


하지만,

상서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한 연인의 사랑. 그 변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그것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그것을 능숙하게 표현하지도 못하는 쥐안성이지만

그런 그를 쯔쥔은 사랑해주고, 함께해준다.


둘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하자고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둘의 삶은 점점 어려워진다.

함께 살기 이전에는 몰랐던,

함께하기에 생기는 불편함.

처음에는 그럼에도 웃으면서, 사랑으로 넘어가지만

점차 쌓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힘든 삶이지만 병아리들을 키웠고,

강아지를 키웠다.


결국 병아리를 잡아먹었고,

강아지를 버렸다.


그것이 종말의 시작이었을까?


어느 날,

쥐안성은 깨닫는다.

(그것이 옳은 깨달음이라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크나큰 반발심을 가진다.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힘든 삶의 연속이고,

사랑이 조금은 식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쯔쥔이 그와 계속 함께했던 이유는

그를 사랑하고, 그도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그녀는 그를 떠난다.

없는 살림. 그마저도 전부 그에게 주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 쥐안성이 고향에 돌아갔을 때.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 작품에서 쯔쥔의 생각은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다.


우리가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쥐안성이 아는 것뿐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쥐안성의 사랑 고백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왜, 어디가 아팠던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쯔쥔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진짜로.


루쉰은 이 이야기를 통해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살아있는 쥐안성의 뻔뻔한 이야기.

그런 작품이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회한과 비애를 쯔쥔을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적어두려고 한다.

- 서문 -


나를 위해서 적어두겠다는 대목에서

영화 '500일의 썸머'가 생각났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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