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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Q정전 - 루쉰

Arundhati 2018. 4. 6. 20:30

오늘 포스팅할 책은

아Q정전!!


아Q정전
국내도서
저자 : 루쉰 / 전형준역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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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국내도서
저자 : 루쉰 / 신여준역
출판 : 글누림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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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권을 읽었다.

같은 단편 집이지만,

아Q정전을 비롯한 대표작들

(쿵이지, 고향, 복을 비는 제사 등)

몇을 제외하면 다른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2종류의 책을 읽은 것!


모든 작품이 재미있었다.

동시에, 중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것을 몰라도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당시 중국의 복잡하고, 어두운

시대가 반영되어 있고,

루쉰은 글을 통해서 그것을 널리 알리려고 한다.


책을 시작하는 서문에는

루쉰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적혀있다.

그것이 너무 인상 깊었다.


글을 배우고, 문화를 통해

중국 인민들을 계몽시키고자 했던 루쉰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남의 글을 베끼기만 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보고 그의 친구가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자

루쉰이 대답한다.


"창살도, 문도 열리지 않는 방에서

모두가 죽어가고 있는데,

잠들어서 아무런 고통이 없이 죽어가고 있지.

그런데 그중 몇을 깨워서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드는 것이 옳은가?"


루쉰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몇몇이 깨어난다고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깨어난 몇만이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하지만 그런 루쉰에게 그의 친구가 말한다.

"깨어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 여럿이 된다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희망'에 대해서 말한다.

사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럼에도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루쉰은 달랐다.


"희망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에

감히 내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글을 쓰지 않을 다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라고 말한다.


세상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루쉰은 아는 것을 넘어서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

난사람이다.

진정

된 사람이다.



많은 단편들을 읽었지만,

대표작인(심지어 제목인) 아Q정전과

다른 하나의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은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약속하면서 넘어간다.


우선 아Q정전.

주인공인 아Q의 정신승리법이 바로

이 작품을 관통하는 대주제이다.


계속해서 실패하는 중국의 '혁명'

가장 혁명적이라고 생각했던 국민당 정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세력으로 드러났으며,

그에 대항하는 혁명 진영조차 실상은

권력 다툼을 하는 세력에 불과한 현실.


혁명의 주체인 국민(인민)들은?

그들이 바로 이 작품에서 아Q로 등장한다.

수많은 형태의 아Q가 등장한다.


서구의 지식이 심취한 사람(가짜 양놈)

돈과 권력의 노예로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 모든 것을 대표하는 아Q


책을 읽다가 생각해보았다.

아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혁명이란 무엇일까?

루쉰이 말하는 혁명이란?


아니, 혁명 그 자체가 무엇일까?


혁명이란 어떤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루쉰이 벗어나고자 했던 상태는 무엇일까?


'노예'라는 상태가 아닐까?


서구 지식의 노예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힘의 노예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혁명을 말하는데

오히려 인민들은

'혁명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중국의 혁명은 계속해서 실패한다.


사실, 그들은 혁명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작품에서는 그렇게 표현된다.

아마도 루쉰이 당시 중국 인민들의 상태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이 혁명을 외치는 이유는

옆에서 혁명을 외치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가 없다.

왜일까?


그들이 바로 아Q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그의 정신 승리법.

그들은 늘 승리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최소한 정신적으로는 항상 이겨왔다.

모든 잘못은 상대의 것이고,

자신은 늘 옳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이기지만,

다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발전이 없다.


늘 이기는 것 같은 아Q는 언뜻 당당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런 아Q의 노예근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변발을 틀어올린 혁명당에게 붙잡혀

사정을 이야기하라고 할 때,

아Q는 무릎을 꿇는다.

일어서서 당당하게 사실을 고하라는 말에도

아Q는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총살 당한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길,

한 구절의 창도 제대로 뽑지 못한

변변찮은 반역자가 되어 죽는다.



변화의 시작은

문제의 인지이다.


혹시

나도 또 한 명의 아Q가 아닐까?


아Q정전은 1923년 '외침'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글 중 하나이다.

앞서 말한 루쉰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잠이 든 채,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루쉰의 처절한 외침이 담긴 글이다.



늙은 비구니의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 너희가 우리를 어떻게 혁명하겠다는 거냐? "

? 로 끝나는 의문문의 문장이지만.

그 안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상서는 따로 포스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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